찬란한 가을 볕에 알록달록 단풍잎이 물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산으로 들로 등산이며, 단풍구경이며 나들이를 떠나지요.
저희 지역에서 조금 떨어진 이웃마을에도 아름다운 은행나무숲이 있어
많은 분들이 가을을 만끽하러 찾아오신답니다.
한없이 펼쳐진 은행나무 숲도 찬바람 불면 모두 다 이파리 져버리고
앙상한 빈 가지만이 지나가는 시간들을 말해주지요.
어떤 사람들은 이 쓸쓸함에 조금 심란해 하기도 할 터이지요.
하지만...
여름내 시설하우스에서 오이를 따고, 고추를 따고
벼를 베고, 토마토를 따던 우리마을 아낙네들은
단풍놀이 갈 틈도 없이,
계절의 심란함을 느낄 새도 없이 요즘 공부 삼매경에 빠졌습니다.
콩을 꺾다가, 들깨를 털다가도
수업시간만 되면 볼펜을 들고, 책을 들고 어김없이 달려오십니다.
미처 머리에 붙은 티껍지들을 채 털어내지도 못한채로요.
농촌마을 종합개발 사업 2년차가 끝나가는 요즈음
향토음식 개발 교육과정의 일환으로
삼생마을에서는 한식조리사 취득 교육과정을 개설했습니다.
삭시토신, 솔라닌, 엔트로도톡신 각종 식중독균의 이름과
아밀라아제, 리타아제 별별 효소와
아우라민,롱가릿 등의 유해 화학첨가물도 외워야하고,
난생 처음 듣는 용어들이 너무 어렵다고 하소연하시지만,
이렇게 고등학교 수험생처럼 빽빽이 노트정리하여 공부하시는 그 열정이 저를 감동하게 합니다.
우리 동네 문영엄마의 공부노트입니다.
줄공책에 배운 내용들을 밤새워 빽빽하게 적고
또 특별히 외워야 할 것들은 이렇게 따로 조그맣게 적어 옆에 붙여놓았습니다.
오이박스를 붙이던 그 테이프로 노트 옆에 붙인 암기노트를 보고
가슴이 찡했습니다.
학교 다닐때 배웠던 내용들이건만
20년이 넘어 다시 보는 저도 이렇게 어렵고 힘든데
난생처음 접하는 용어들을 보면서 얼마나 그 공부가 힘들고 어려울지
더구나 아직 가을걷이가 마저 마무리 되지 않은 상태에서 하는 공부라 얼마나 고될지
게다가 틈틈이 남의 집 일도 다니면서 부식비라도 벌려고 애쓰는 농가아낙들이기에
조금도 쉴 틈 없는데....
덕분에 저도 어찌하면 더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까...
요점정리 유인물을 만들어 드리고,
기출문제도 뽑아드리고
공부하는 요령을 알려드리면서 정신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일주일이 어찌나 빨리 지나가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공부하다 잠시 쉴 참에 함께 먹으려고 포도도 가져오시고, 고구마도 쪄오시고,
또 갓 딴 싱싱한 오이도 가져오셔서 함께 나누어 먹으며
공부하고 있답니다.
얼마전에 대학교때 은사님께서 다녀가시며
농촌마을에서 사는게 얼마나 힘든지
또 농촌마을 사업을 꾸려나가는게 얼마나 큰 어려움인지
도시에서 나고 자란 저를 잘 아시기에 남편의 고향에서 뿌리내리려 애쓰는 그 생활을 잘 아신다며
위로와 격려를 해 주셨습니다.
순간 저도 모르게 눈물이 글썽해져버렸습니다.
그러면서 선생님께 말씀드렸지요.
제가 농촌에서 살아가면서 가장 큰 힘을 얻게 되는 것들이 있다구요.
밝고 건강하게, 남을 배려하는 사람으로
생명가진 것들의 소중함을 알고 자라난 제 아이들에게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고향을 만들어 준 것과
농한기면 센터에 모여 굳어진 손으로 컴퓨터 공부를 하고
배운 것들을 집에서 복습하시며 활용하는 그 모습들이었다구요.
또 머나먼 타국에서 시집와서 제 2의 고향으로 삼으며
아들 딸 낳고 열심히 농사일도 하면서
살아가는 다문화가정 주부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준 것들
그런 것들이 제가 농촌마을 일을 하면서 얻은 보람이었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마을 사업을 통해 마을에서 필요로 하는 건물이 지어지고
마을주민들의 소득이 높아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불어 사는 공동체의식이 형성되고
내마을에 시설 하나 더 끌어오려고 아웅다웅 아귀다툼하는 것보다
서로 위하며 양보하고 배려하는 인정이 있는 농촌마을로
자리잡는게 더 소중하다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그리고 그런 의식들은 '돈'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주민교육 등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합니다.
바쁘고 힘든 강행군시간이지만, 그래도 좋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떠나는 농촌을 지키며
열심히 생활하는 우리마을 아낙네들이 저는 정말 좋습니다.
참 ~~~ 좋습니다!!
- 그나저나 음식에 관해 공부하다 보니 안심하고 먹을만한게 없습니다.
온갖 색소며 화학첨가물이며 방부제며
6개월을 두어도 벌레 하나 안 나고 안 썩는 그 음식들을 우리가 생각없이 먹고 있다고 생각하니...참 그렇습니다.
그야말로 우리 농업농촌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진정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농업인으로서
긍지도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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