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어촌진흥공사 촌아띠 네티즌블로거

농부의 마음

삼생아짐 2012. 4. 17. 15:59
728x90

 

 농촌에서 살다보니 가끔 '농가월령가'의 가사가 생각납니다.

 

어쩌면 이리도 우리네 농촌살이와 똑같은지...

 

3월3짇날이면 강남갔던 제비가 돌아온다더니

 

제비없는 사이 겨우내 박쥐가 살던 집에 엊그제 제비가 돌아와 집 주변을

 

서너바퀴 돌며 인사를 건네고

 

(중국에 있는 강남이란 곳을 갔을때 혹 우리집에서 온 제비가 있나 궁금하여

 

안부를 물은 적도 있답니다.^^) 

 

 

 논, 밭둑을 손질하고 가래질을 시작하는데 비로소 논농사의 시작입니다.

 

며칠전부터 모자리판을 다듬어서 모를 놓을 곳을 마련해 놓았습니다.

 

 

예전에는 물을 가두어 삶아 발이 푹푹 빠져서

 

논에 들어가는 일이 매우 힘들었는데

 

이젠 마른 논에 모자리를 하고

 

나중에 물을 댑니다.

  

 

손짝들끼리 모여 모판 상자에 볍씨를 넣는 작업을 했습니다.

 

 

제일먼저 모판을 기계에 밀어넣으면

 

 

일차로 흙이 담기고 그 위에 볍씨가 내려갑니다.

 

 

그 위에 다시 흙이 덮이고

 

 

완성된 모판을 트랙터 바가지나 트럭뒤에 차곡차곡 쌓았다가

 

모자리논으로 내가는거지요.

 

 

중간중간 기계가 멈추지 않도록 볍씨를 보충해주고

 

 

흙을 채워넣어줍니다.

 

예전에는 모자리에 쓰일 흙을 일일이 퍼다가 체에 쳐서 소독약을 치고

 

또 상자에 밑흙을 담고 볍씨위에 복토하는 일도

 

모두 하나하나 손으로 해야했고

 

볍씨를 담는 기계도 쉬임없이 손으로 돌려야해서

 

모자리 하는 일이 하루종일 걸렸지만

 

이젠 모자리흙도 비료처럼 상품으로 나와

 

체에 걸러 칠 필요도 없고

 

또 파종하는 기계도 거의 자동이라 시간이 적게 들고 힘도 그만큼 적게 듭니다.

 

 

다만 틈틈이 손이 가는 일들은 아직 수작업이 필요해서 최소한의 인력이 필요한데

 

오늘 작업에서는 제가 상자 담당이었지요.

 

근데 일찌감치 모자리를 마치신 이웃집 정원네 어머니가 거들어주셔서

 

전 상자의 흙을 털고 옆에 쌓아다주는 상자보급 담당을 했습니다.

 

 

지나가던 분이 옥수수생막걸리를 사오셔서

 

묵은김치를 안주로 잠시 목을 축였지요.

 

 

교회다니시느라 술을 일절 입에도 안 대시는 정원어머니를 꼬드겨서 한 잔 드렸더니

 

입에 대자마자 인상을 확 쓰시는데, 그 모습이 너무 웃겨서 모두들 폭소를 터뜨립니다.

 

내내 마른 흙먼지를 마셨던 참이라 막걸리를 마시니 목이 시원한게 참 좋습니다.

 

한잔더(!)를 외쳤더니 마시려던 잔을 제게 건네주고 남편은 슬그머니 뒤로 내뺍니다.

 

뒷집 할아버지가 제가 술 마시는 거 처음 봤다면서

 

다음에 더 사다주시겠답니다.

 

워낙에 술을 좋아하시는 아저씨라 오며가며 저희 집 소주를 많이 비워주시는데

 

제가 막거리를 마시니까 신기해보였나봅니다.

 

 

막걸리 새참을 먹고 돌아보니 누군가 상자를 몽땅 다 옮겨다놔서

 

그만 제 할일이 없어져버렸습니다.

 

제가 이 기특한 범인(?)을 찾았더니

 

사람들이 씨익 웃으면 서로 고개짓을 합니다.

 

아니나다를까, 남편이 '누가했겠냐??'큰소리치며 저를 보고 활짝 웃습니다.

 

며칠전부터 손짝수를 헤아리며 걱정하더니

 

생각보다 일이 일찍 끝나니 기분좋은가 봅니다.

 

 

겨우내 창고에 놓인 모판 상자속에서 볍씨와 해바라기씨를 까먹은 새앙쥐녀석들

 

혹 어디선가 튀어나올까 싶어

 

상자를 터는 일이 슬몃 신경쓰이던 차에

 

내 임무가 다 끝나고 나니 속이 시원합니다.

 

어쨌든 이 쌀로 농사지어 밥을 먹을때, 저도 한몫했다고 큰소리칠 일은 있으니까요.

  

 

너무 가물어 비가 언제나 올까 기다렸지만

 

막상 모자리하는데 비가 오면 어쩌나 걱정했더니

 

날이 참 좋습니다.

 

비글이녀석, 분주한 농부들의 손길과는 상관없이

 

따뜻한 땅바닥에 엎드려 졸음 삼매경입니다.

 

일하시던 어른들이 '개팔자가 상팔자'라며 이녀석 언제나 먹을까 날짜 헤아립니다.

 

"택도 없어요!!!"

 

그때마다 제가 펄쩍 뛰곤하는데 왜 이리 눈독을 들이시는지...

 

절대로 잡아먹지 않을거라는 걸 아시면서도 늘 저를 놀리시곤 하지요.

 

이렇게 이웃들과 일을 하는 날은 쉬임없는 농담과 웃음소리가 들려야 일이 덜 고되게 느껴지지요.

 

 

모판을 차곡차곡 놓고, 보온덮개와 비닐을 덮어 보온을 해 줍니다.

 

고랑을 파서 물을 대고 습도를 맞춰 싹이 트도록 해 줍니다.

 

이 속에서 파릇파릇 싹이 나서 모가 크면

 

한 달 후에 논에 내심게 되는거지요.

 

그동안 물관리며, 햇빛 관리며 아침 저녁으로 들여다보아야할 터이지요.

 

 

요번 달 초에도 눈이 내리고

 

엊그제까지도 찬바람 불고 서리내려 봄이 멀었다 싶더니

 

모자리를 해놓고 나니 이제 정말 '봄'이라는 실감이 납니다.

 

 

바쁘고 힘든 계절의 시작......

 

다음달의 모내기가 끝나면 모살이를 걱정하고

 

모살이가 끝나면 태풍과 각종 질병을 걱정하고

 

냉해와 수해, 가뭄 등의 이러저러한 걱정들이 끊이지 않는 농가의 사계절입니다.

 

 

해마다 돌아오는 계절

 

'농사는 하늘이 먹어라 해야 먹는다'던 남편의 말에 공감을 하면서도 

 

잘 될거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것

 

자식을 기르듯이 모든 농사일들을 정성을 다해 묵묵히 해내는 그 마음이

 

바로 '농부의 마음'인가 봅니다.

 

 

오늘밤에는 예년의 그 풍요로운 농촌 들녘을 꿈꾸며 잠이 들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