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에서 살면서 요맘때가 되면 가끔 개미와 베짱이 우화를 생각해봅니다.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부지런히 일한 개미는 곳간을 채우고
겨울이 되어 배고픈 베짱이에게 양식을 나누어주지요.
언제부터인가...
이 말을 해주면 우리집 녀석들은 반론을 제기합니다.
베짱이도 나름대로 제 할일을 다한다는거지요.
베짱이는 오늘날의 가수나 연예인이라는 거지요.
즉 오늘날의 연예인들은 땅파고 일만하는 개미보다
돈도 더 잘벌고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므로
더 보람된 직업일 수도 있다는겁니다.
삼생아짐 ; 시꺼, 임마. 그 연예인은 아무나되냐??
종알거리는 아들녀석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고...
올 봄날
아들녀석을 앞세워 5일장에 나가서 여러가지 모종을 사왔습니다.
그래도..어쨌든 농촌에 사는 우리들로서는
봄에 씨앗을 뿌리고 여름내 가꾸지 않으면
겨울에는 굶어죽을 수 밖에 없는 개미일수밖에 없지요.
장을 보러갈때마다 짐꾼 노릇을 자처하는 아들녀석
역시나 여러 모종이 든 상자를 번쩍 들어다 날라줍니다.
삼생아짐 ; 에궁, 기특한 녀석...
아들의 엉덩이도 두들겨주고, 아들녀석이 좋아하는 핫도그도 사주고
그렇게 우리집의 봄을 시작했습니다.
찰옥수수가 밭으로 나가고 난 뒷자리에
아들과 함께 모종들을 심어서 물을 주고, 풀을 뽑고 열심히 가꾸었더니
나름 결실을 맺기 시작...
여름부터 풍성한 수확을 거두어서
이웃과 친척들과 나누고도 남아서
녀석의 여름내 간식거리와 밑반찬을 훌륭하게 해결했지요.
이렇게 탐스러운 맷돌호박들도 주렁주렁 달려서
역시....이웃과 나누기도 하구요...
늘 주변분들로부터 얻어먹기만 하다가
이렇게 직접 농사지은 것들을 나누어 드리니 그 기쁨도 꽤 괜찮습니다.
추워지기 시작하는 요맘때...저녁이면 아들녀석이 간식타령을 해서
호박죽을 쑤어주었네요.
아뿔싸...
호박죽 쑤면서 단단한 호박껍질을 깔때마다 꼭 손을 베어요.
호박껍질을 깔때 손에 들고 까면 절대 안된답니다.
내려놓고 깍두기 썰듯 껍질을 썰어내야 하는데...
해마다 잊어버리고선 손을 베곤하는 연례행사가 되어버렸네요.
아들녀석, 대일밴드 찾아다 붙여주고
엄청 미안해 합니다.
그래서 다 쑨 호박죽을 먹을때마다
녀석, 두배로 맛있는 척, 엄마가 최고의 요리사라느니,
엄마는 얼굴도 이쁜데 음식솜씨도 좋다느니
아부도 두배로 하곤 하지요.
추운 겨울날...
따끈한 방안에서 Qook 텔레비젼으로 드라마 다시보기 하면서
녀석과 달콤한 호박죽을 먹을때면
부지런한 개미의 작은 기쁨을 느껴보곤 한답니다.
역시...부지런한 농부만이 겨울 휴식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진리를
새삼 실감합니다.
그나저나 제가 이 호박죽 쑤어준 날이 하필이면
울 아들녀석 기말고사 보기 전날...
삼생아짐 ; 야, 너 이 호박죽 먹고 시험 죽쓰면 어떡하냐??
했더니
엄마가 미리 대신 죽쒀줬으니깐 괜찮을거라나요.
참 대단한 녀석이네요.
아, 가끔 이 호박죽은 우리 식구 아침 식사가 되기도 해요.
제가 늦잠 잔 날이요.
그래서 울 최후의 보루, 제가 호박죽 쑤면 조금 덜 반가워하지요.
그래도 이 호박죽은 영양면에서나 맛으로보나
나무랄데 없는 영양식이랍니다.
남편이 인상 찡그릴때면 제가 가끔 상기시키지요.
삼생아짐 ; 우리집 가훈 잊었어요?? 주는대로 먹자!!!
정말 가훈 하나는 끝내주게 잘 만들었어요.^^
ps. 호박죽 맛나게 쑤는 법
준비물 ; 늙은 호박 반통, 보짱 단호박 한개, 찹쌀가루 열큰술(저는 미흑찰옥수수가루를 썼어요),
설탕 반컵, 굵은 소금 한큰술
냄비에 호박을 잘게 썰어넣고, 물을 3분의일정도만 넣는다.
굵은 소금 한큰술을 넣고 팍팍 끓인다.
(주말 드라마 한편에서 반쯤 보고와도 돼요.
한 편 다 보면 눌어붙습니다.)
체를 받치고 주걱으로 으깨어준후
찹쌀가루를 넣고 5분정도 저어가며 뜸을 들이면 끝!!
맛난 호박죽, 참 쉽죠??
......
ps2.우리 민재녀석, 이 글 보더니 자기가 베짱이라면
개미와 베짱이 동화 쓴 사람 고소한대요.
베짱이가 노래를 잘 불러줘서 개미의 작업 능률이 올랐다나요?
그 은공을 모르면 안된대요.
이솝이 이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길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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