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국외)

메이드 인 제팬

삼생아짐 2009. 6. 20.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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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메이드 인 재팬?


일본행 비행기 탑승 시간이 끝나갈 때가 되어도 담배 피러 간 남편을 비롯한 일행 넷은 보이질 않는다.

“어디 가셨어요?”

중앙 사업단 김용완 대리가 애가 타는 듯 묻는다.


“너구리 잡으러요.어쩌죠? 가방 안에 네 박스나 사 넣었으니, 여행 내내 속 썩이게 생겼네.”

김용완 대리와, 같이 있던 비흡연파 위원장님들이 허허 웃는다.

몸에도 안 좋은 담배를 네 박스나 사면서 면세 값에 싸게 샀다고 애들처럼 좋아하는 골초남편을 보니 한숨이 절로 난다.


“그래도 국산이예요. 고양이 그림 있는 거, 레종.”

농사꾼이 양담배 샀달까봐 얼른 변명을 덧붙인다.


인천 국제 공항을 출발 한 지 한 시간 반 만에 일본 도착.

오사카 간사이 국제 공항에 도착해 찍은 여권을 보니 입국허가가 아닌 상륙허가라 되어있다. 섬나라에 도착한 실감이 난다. 버스를 타고 시 외곽지역인 나라로 이동하면서 본 일본의 첫인상은 도시와 농촌이 적절히 조화된 모습으로서 거리에는 휴지 한 조각 없이 깨끗하고 정갈한 느낌이다. 게다가 울창한 삼나무와 대나무가 어우러져 숲을 이룬 모습은 웅장하기까지 했다.


“우리나라 삼림단이 오면 돈 좀 벌겠군.”

삼생마을 부위원장이자 나의 남편이 농담을 던진다.


사실 이번 연수에 참가해서 많이 보고 배워 와서 우리 마을에 접목시키라고 위원장이 양보해서 부부임에도 불구하고 남편과 나란히 연수길에 오를 수 있었다. 다른 마을 위원장님들이 신혼여행 와서 좋겠다고 다들 놀리신다.


“너 농사꾼인 나한테 시집 안 왔으면 어떻게 비행기를 탈 수 있겠어, 안 그래?”

어련하실라구요, 의사(醫師), 박사, 변호사 보다 자모배열상 앞서는 게 ‘농사’꾼인데...... ‘사(事)’자 들어가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고 큰소리치는 사람이 바로 그다. 하긴 그 당당함이 좋긴 했지만.


한 낮에도 햇빛 한 줄기 삐져 들어갈 틈이 없을 정도로 빽빽한 삼나무 숲은 시간이 지날수록 답답한 느낌이 든다. 물론 저 삼나무는 땔감을 하고, 집을 짓고, 다리 난간을 만들고 각종 건축 자재에 두루 쓰이는 귀한 자원이라지만 우리나라의 향긋하고 여유로운 소나무 숲이 가진 운치는 눈 씻고 찾아볼래야 없다. 보면 볼수록 답답하고 숨이 막혀오는 듯하다.


버스가 나라현의 아스카무라 지역으로 들어서면서 飛鳥라는 한자어가 자주 눈에 뜨인다.

아스카라는 지역이 원래 새가 날아간 지역이란 뜻이란다. 아니게 아니라 까마귀가 자주 눈에 뜨인다. 일본에서 까마귀는 길조라 했다. 원래 까마귀는 태양신의 사자로서 우리나라에 새겨진 솟대의 오리도 예전에는 까마귀였단다. 불길한 일을 미리 암시해 주기 때문에 언제부터인지 우리나라에서는 까마귀를 흉조로 여기고, 까마귀가 요란스레 우는 날에는 소금을 뿌리거나 물을 뿌려 액땜을 하고 그 자리를 원앙이나 오리가 대신하고 있다.


일본의 저녁은 어쩐지 더 어두운 듯하다. 민가가 꽤 많이 있는데도 밝게 불 켜진 집이 없다. 촉수 낮은 전구가 한 두 집 건너 하나씩 켜질까 말까, 꽤 신산스럽다. 원래 불을 잘 밝히질 않는단다. 내가 살고 있는 강원도 산골마저 이리 어둡지는 않은데.. 어찌된 조화냐 했더니 일본사람은 아끼는 민족이라서 쓸데없는 불을 밝히지 않는다고. 나라는 부자라 해도 국민들은 가난해서 검소함과 절약정신이 몸에 배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느끼는 저녁 무렵의 솔가지 타는 향이나 굴뚝 연기는 아늑함이지만 낯선 일본에서 느끼는 저녁 무렵은 어쩐지 음침하고 기가 탁 질려버린다.   


잘 꾸며진 정원의 아름다움이 인공으로 느껴지고, 일본에 대해 가졌던 선입견이 그대로 들어맞는 느낌. 여행을 할 때마다 편견 없이 그 장소를 눈으로, 마음으로 느끼고자 노력하는 편인데 어쩐지 일본의 저녁풍경은 선입견을 버리고자 해도 부정적으로 다가온다.

그래도 편견 버리기. 여행자의 너그러움 갖기. 포용하기. 속으로 중얼거린다.


좁은 도로를 거대한 버스가 통과해 들어가려니 저만치 멈춰 서서 다른 차들이 지나가길 기다린다. 우리나라 도로 폭 보다 약 40센티미터 정도 더 좁을까, 그래서인지 경차들이 많다. 차들의 모양도 다양하고 디자인도 날렵하다. 경차들의 표지판 색깔은 노란색. 정부 지원도 많단다.


도착한 곳은 버스가 들어갈 수 없는 곳. 걸어서 약 5분정도 들어가니 민숙이 나온다. 지명 수배자 포스터와 오래된 다이얼 전화기가 우리나라 70년대 여인숙 같은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와카바 민숙이라는데 한자어로 약엽(若葉)이라 쓰여 있다. 낙엽인지 고엽인지 한자 세대가 아닌지라 무지 헷갈렸다.

 



      간판 약엽 맞죠??  주인장 아저씨와 함깨...


어쨌든 짐을 풀러 들어간 이층 방에서는 기절할 뻔했다. 


방과 방 사이는 얇은 종이 두께의 판자 하나로 막혀있고, 잘못 돌아누우면 발길질 한 번에 뻥 구멍 날 수도 있을 듯싶다. 게다가 바닥은 다다미를 깔아 썰렁하고 어설프고, 한기가 도는 게 사방이 문이다. 아무리 무덥고 습한 여름 때문에 이런 구조로 지었다지만 옆방의 숨소리도 들을 수 있을 듯, 신혼여행 분위기는커녕 어떻게 자나 싶은 게 엄두도 안 난다. 벌써부터 따뜻한 우리의 온돌이 그립다.


“어떻게 애를 만들고 사누?”

“그러니까 애들이 별로 없잖아.”

“온 김에 애나 하나 만들까?”

“메이드 인 재팬?”
둘 다 깔깔 웃고 말았다. 


아닌게아니라 오면서 애들을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젊은 사람을 본 기억도 별로 없다. 일본의 농촌도 젊은 사람들이 떠나고 나이 든 사람들만 남아서 지키는 건가. 농사일이 힘든 건 이 나라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옆방에서의 떠들썩함에 아랑곳없이 부위원장은 한국에서 사간 팩소주를 마시고 코를 골며, 태평하니 참 잘도 잔다. 파트너 바뀌면(?) 잘 자도 잠자리 바뀌면 잘 못 잔다며 어디를 가도 한밤중에 돌아오곤 하더니 세상모르고 자는 폼을 보니 말짱 거짓말 같다.


이방 저 방에서 코 고는 소리, 새벽 두, 세시까지 토론하는 소리. 

이런 저런 소음들로 뒤척이다 모로 누워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지샜다. 


으슬으슬 추운 게 단박에 몸살 났다. 여행 첫 날부터 컨디션 꽝이다. 내일도 이러면 난 완전 고양이 눈 될 터......잠을 제대로 못 이룬 덕분에 방 열 칸에 단 한 칸 뿐인 샤워실은 제일 먼저 차지했지만  그래도 춥다. 한국의 온돌이 여자들에게 얼마나 고마운 문화인지 정말 실감나는 날이었다. 



일본 민숙 약엽의 홀

(뒤로 보이는 지명수배범 얼굴. 혹 아는 분 있으면 신고하시길... 

상금도 걸려있음. 

앞에 앉은 사람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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