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푸른색의 타일 덕분에 ‘술탄 아흐메트 1세 사원’이라는 말보다
‘블루 모스크’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져 있다면
바로 그 옆에 있는 성당은 외벽이 붉은색을 띠고 있는데 성당 이름은 '아야소피아'이다.
블루모스크가 바로 이 아야소피아의 건축 양식을 따랐다고 한다.
아야소피아 내부
여전히 건축수리중...
유럽의 건물들은 꽤 오랜 역사를 지니는데 아직도 짓거나 보수중인 건물들이 많아서
볼 때마다 공사중...ㅠㅠ
아야소피아는 '거룩한 지혜'라는 뜻으로
6세기에 세워진 뒤 1000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였다고 한다.
공식명칭은 '하기아 소피아 그랜드 모스크'이다.
아야소피아 내부 안내도
16세기를 전후
대규모 교회들이 만들어지면서
로마의 성베드로대성당,(세계에서 가장 큰 성베드로 성당 blog.daum.net/sybaik333/6993704)
런던의 성바울로성당,
밀라노의 두오모성당(story.kakao.com/sybaik333/JEyBkUk0GQA)에 이어
네 번째로 큰 교회가 되었지만
현존하는 교회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라고 한다.
아야소피아는 '스스로 빛을 내는 경이로운 신전'이라는 말이 붙어 있는데
그 안에 들어가면 웅장함과
화려한 불빛에 다시 한 번 놀라게 된다.
아야소피아가 세워질 6세기 무렵의 이스탄불은
비잔틴제국의 수도로서 콘스탄티노플로 불렸다.
지금의 아야소피아는 유스티니아누스 1세(Justinianus I, 483~565) 때 건립(532~537)되었는데 1935년 터키의 초대 대통령 케말 아타튀르크(Kemal Atatürk, 1881~1938)에 의해 소피아박물관으로 변모해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다.
(위키백과 참조)
거대한 돔 때문에 건물 내부는 마치 지붕이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한다.
물질에 속박되지 않는 정신성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로 해석된다.
건물의 돔을 처음 본 사람들은 천장이 내려앉지 않는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고 한다.
아야소피아는 비잔틴 건축의 특징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건물로
벽이나 창문 사이의 벽 등으로 건물의 압력을 견디게 함으로써
로마 건축물처럼 많은 기둥을 세우는 것을 피하는 것이다.
대부분 벽돌을 사용하고, 특별한 강도가 요구되는 것에는 석재를 사용하였으며
그리스 양식의 원기둥은 유스티니아우스 황제가 아테네와 에페소스에서 갖고 온 것이라고....
537년 유스티니아누스의 궁정 시인 파울로스 실렌티아리우스
“칼부림 소리에도, 남과 서에서의 승전에도, 심지어는 피로 뒤범벅된 패배한 폭군들의 전리품에도
나는 찬가를 부르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는다.
나는 영광의 광휘에 휩싸여 전쟁의 모든 위업과 모든 궁전을 무색케 하는 경이로운 신전 아야소피아에게 찬가를 바치려고 한다.
아야소피아는 스스로 빛을 낸다.
자신의 중심으로부터, 신적인 지혜의 태양으로부터 빛을 낸다.”
중앙 돔 안에 걸려 있는
검은 바탕에 금색으로 쓰인 컬리그래피의 둥근 판에는 알라와 무하마드, 네 명의 칼리프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또한 중앙 돔 안의 글들은 코란에서 인용한 것이다.
궁정 시인 파울로스 실렌티아리우스의 말에 비롯해서
아야소피아를 스스로 빛을 내는 경이로운 신전이라 부르는 것이겠지만
나는 성당내부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샹들리에를 보고 그런 느낌을 받았다.
보는대로 느끼는대로^^;;
아야 소피아에서 가장 유명한 부분인 '옴팔로스'라고도 불리는 옴팔리온이다.
옴팔리온은 중앙 돔 바로 아래 본당의 남동쪽에 있는데, 각면의 크기는 5.65m이다.
거대한 정사각형의 모습을 띠고 있는데, 이 정사각형 속에 가운데에 큰 원 하나가 들어가 있고,
그 주변을 30여개의 대리석 원형 타일들이 감싸고 있다.
이 원들은 다채로운 색깔로 이루어져 있는데,
태양계를 상징한다고.
가운데의 큰 원은 황제의 절대적인 권력과 명예를 상징한다고...
이 원은 비잔틴 제국의 황제들이 즉위식때 앉아있던 자리라고 하는데
정확한 설은 아니라고 한다.
아야 소피아 성당에는 2개의 거대한 대리석 항아리가 놓여 있는데
이름은 페르가몬 항아리.
이 항아리는 술탄 무라드 3세가 페르가몬 지역에서 가져온 것으로
헬레니즘 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고.
1250L에 달하는 물을 담을 수 있으며,
거대한 대리석 바위 하나를 깎아 만들었는데,
오스만 제국 시대에는 예배 중 사람들에게 음료를 나누어주거나
몸을 닦을 수 있게 물을 저장해 놓는 용도로 주로 쓰였다고 한다.
성당의 북서쪽에는 중간에 구멍이 뚫린 청동으로 감싸진 기둥이 하나 서있는데
이 기둥은 '소원의 기둥', '땀흘리는 기둥', '눈물흘리는 기둥' 등과 같이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이 기둥의 정식 이름은
‘마리아의 손 모양’이라고.
기둥의 움푹 파인 곳에 손가락을 넣어 물을 적시면 눈이 좋아지고 자손이 복을 받는다고 한다.
특히 움푹 파인 곳에 엄지손가락을 넣고 나머지 네 손가락 끝으로 기둥에서 떨어지지 않고 원을 그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1200년에 성 그레고리가 이 주변에서 기적을 일으켰고,
그 때부터 이 기둥이 축축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 기둥의 습기를 만지면 많은 질병들을 치유할 수 있다고 한다.
글쎄, 나는 축축함까지는 잘 모르겠더라.
얼떨결에 손을 넣어 돌려보긴 했다.ㅋ
2층 올라가는 길
이층으로 올라가보면
여전히 여기저기 공사중...ㅠㅠ
그중에 가장 눈에 들어오는 부분은 모자이크들이다.
아야 소피아의 초기 모자이크는 유스티누스 2세 치세에 처음 완성됐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비 상징적인 모자이크들,
즉 인간의 모습을 띄지 않은 모습의 모자이크들이 주로 그려졌다고.
우리가 지금 볼 수 있는 대부분의 모자이크는
비잔틴 성상파괴운동이 끝난 10세기에서 12세기 사이에 그려졌다고 한다.
위의 모자이크는
조이 여제의 모자이크
상부 갤러리 남부의 동쪽 벽에 위치하며,
11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모자이크 중앙에는 검푸른 옷을 입은 예수가 황금빛 배경을 바탕으로 오른손으로는 축복을 내리며,
왼손으로는 성경을 들고 앉아있다.
그의 머리 양쪽 옆에 쓰인 문구는 IC와 XC인데, 이는 Ιησούς Χριστός의 모노그램이다.
그의 양 옆에는 정식 예복을 갖춰 입은 조이 여제와 콘스탄티노스 9세가 서있다.
콘스탄티노스 황제는 지갑을 예수에게 바치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는 황실의 교회에 대한 기부를 상징.
또한 조이 여제도 두루마리를 쥐고 있는데, 이 또한 황실의 기부를 상징한다고.
콘스탄티노스 황제의 머리 위에 쓰여 있는 문구는
'콘스탄티노스, 그리스도의 축복을 받은 경건한 황제, 로마인들의 왕, 모노마호스''라는 뜻이라고.
조이 여제 위에 쓰인 문구는 '조이, 매우 경건한 황비'라는 뜻이다.
조이 여제는 결혼을 세 번 했기 때문에, 남편이 바뀔 때마다 모자이크에 새겨진 남편의 얼굴도 바뀌었다.
첫 번째로는 로마노스 3세, 두 번째는 미하일 4세, 그리고 마지막으로 콘스탄티노스 9세의 순서로 차례대로 얼굴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다만 몇몇 학자는 이 얼굴들이 전대 황제와 황후의 얼굴을 긁어내고 자신들의 얼굴을 갖다 붙인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콤네누스 모자이크
상부 갤러리 남부의 동쪽 벽에 자리하며 1122년에 만들어졌다고.
성모 마리아가 검푸른 베일을 쓴 채로 전통적인 비잔틴 형식으로 그려져 있다.
그녀는 아기 예수를 무릎 위에 안고 있는데,
아기 예수는 오른손으로 축복을 내리며 왼손으로 두루마리를 쥐고 있다.
그녀의 오른쪽에는 요안니스 2세 콤네누스가 있는데,
그는 황실의 교회에 대한 기부의 상징인 지갑을 쥐고 있다.
성모 왼쪽에는 이리니 황후가 서있는데,
종이를 들고 있는 채로 상징적인 예복을 입고 있다.
인접한 공간에는 당시 황태자였던 알렉시오스 콤네누스가 그려져 있는데,
수염이 없는 젊은 모습으로 형상화되어 있기에 그가 17살에 황태자로 즉위하였을 때의 모습을 나타낸 것이라고 추측된다.
이 모자이크는 조이 여제의 모자이크와도 상당히 비교가 자주 된다고.
콤네누스 모자이크가 약 1세기 정도 후에 만들어진 것인데,
이리니 황후의 모습에는 곱슬머리, 붉은 뺨, 회색 눈과 같은 헝가리인의 전형적인 모습이 그대로 표현이 되어있는 등 훨씬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또한 황제는 훨씬 더 근엄한 얼굴로 묘사되어 있기도 하다.
데이시스 모자이크
1204년에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고 대대적으로 약탈했을 때,
라틴인 원정대들은 콘스탄티노플에서 엄청난 양의 보물들을 약탈해 갔는데
이 보물들 중에는 아야 소피아를 장식하고 있던 황금 모자이크들도 포함이 되어있었다.
저렇게 없어진 부분이 바로 황금조각들이라고...ㅠㅠ
이 보물들은 대부분 당시 엔리코 단돌로가 통치하고 있던 베네치아로 옮겨졌다고 한다.
후진모자이크
(조오~~기 천장 벽에...ㅋ)
성상 파괴 운동이 끝난 후 다시 인물의 모습을 표현하기 시작한 단계의 모자이크로
867년 3월 29일에 미하일 3세와 바실리우스 1세에 의해 공사가 처음으로 명령되었다.
후진의 반형 돔 상부에 위치해 있는데,
성모 마리아가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그녀가 앉아있는 의자와 받침대는 모두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다.
모자이크는 황금색 타일을 배경으로 박혀 있는데,
6세기의 성상 파괴 운동으로 인해 파괴되었던 것을 9세기 들어 다시 복원한 것으로 생각된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길
계단이 아닌 돌로된 길이다.
조금 미끄러우므로 조심조심^^
아까 올라온 길이다.ㅎ
황제의 문 모자이크
황제의 문 모자이크는 황제의 문 바로 위의 팀파눔에 자리하고 있는데
이 문은 오직 황제가 건물 내부로 출입할 때만 사용되던 문이라고.
9세기 후반이나 10세기 초반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며,
보석이 박힌 보좌에 앉아있는 예수 앞에 엎드려 경배하고 있는 사람은 레온 6세나 콘스탄티노스 7세로 추정.
예수는 모자이크 속에서 한 손에는 책을 든 채로 황제에게 축복을 내리고 있다.
책에 적힌 문구는 요한 복음서 20장 19절 '평화가 너희와 함께'와 8장 12절 '나는 세상의 빛이다'라는 구절이다.
또한 예수 양 옆으로는 두 개의 원이 그려져 있는데, 왼쪽 원 안에는 가브리엘 천사, 오른쪽 원 안에는 성모 마리아가 그려져 있다.
바깥으로 나가는 문위에도 모자이크가 있다.
아야소피아는 326년 콘스탄티누스 1세(Constantinus I, 274~337)가
비잔티움에 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건설한 후
330년 황제의 명에 따라 황제 궁전과 전차 경기장 옆에 나무 지붕을 한 작은 교회로 처음 지어졌다.
이후 404년 동로마의 아르카디우스(Arcadius, 377~408)황제 때 화재로 무너졌다가 데오도시우스 2세(Theodosius II, 401~450) 때 재건되었고 유스티니아누스 1세 때 일어난 ‘니카의 반란’으로 다시 파괴되었다.
유스티니아누스황제는 그 잔해 위에 황제의 권위와 교회의 영광에 어울리는 새로운 성당을 세우기로 결정하고 트랄레스의 건축가 안테미우스(Anthemius)와 밀레토스의 수학자 이시도레(Isidore)를 투입했다.
그들은 초기 기독교 바실리카와 황제의 궁전을 조합한 구조를 생각해냈다고.
이 성당의 완공 기념식에서 당시 동로마제국 황제 유스티니아누스는, 하느님을 모실 예루살렘 대성전을 세운 솔로몬왕을 이겼다고 감격해했다고 한다.
아야소피아 기념품들...
아야소피아 외부의 돌기둥들
세월의 흐름이 느껴짐...
아야소피아를 나와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데
터키의 기념품 가게
아이들 옷이 눈에 들어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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