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 아들과 함께한 사랑의 못자리
마을에 진달래꽃이 활짝 필 때면 바로 한해농사의 절반이라 불리는 못자리가 시작된답니다.
예전에는 논에 볍씨를 직접 뿌리는 직파법으로 논농사를 시작하였지만 지금은 볍씨를 소독약에 발아시켜 흙과 함께 모상자에 넣고 따뜻한 비닐하우스 안에서 싹을 틔워 논에 내보내기 전까지 파란 싹으로 길러내는 과정을 못자리라 한답니다.
조선시대 백성의 생활에 관심을 가졌던 세종대왕에 의해 어린 모를 키워 논에 내어 심으면 훨씬 더 많은 수확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우리네 농촌에서 대대로 이어내려온 농사법입니다.
못자리를 하려면 상자를 넣어주는 사람, 흙을 보충해 주는 사람, 빈 곳을 채워주는 사람, 완성된 모판을 기계에서 분리해 주는 사람, 차에 싣는 사람, 모판에 늘어놓은 사람 등 여러 사람의 손이 필요한데 일손이 달리는 요즘의 농촌에서는 서로서로 품앗이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손짝이라고, 못자리와 모내기 등 함께 일해야 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두레를 형성하는데, 서로서로 못자리 일을 품앗이로 돌아가며 해 줍니다.
그런데 올해, 손짝 중에 한 분이 암으로 돌아가시고 또 한 분은 연세가 너무 들어 못 나오셔서 손짝이 비게 되어 어찌해야 하나 고민고민했는데 군대에 있는 아들이 못자리 날짜에 맞춰 외박을 나오겠다고 하더니 정말 새벽같이 달려 나와서 손짝의 빈자리를 채워주었습니다.
며칠 전부터 소독액에 담가서 소독을 하고, 싹을 틔운 볍씨입니다.
올챙이 꼬리처럼 하얗게 살짝 빠져나온 꼬리 보이시죠?
이게 바로 볍씨의 눈입니다.
가을철, 볍씨를 말리다 보면 이 꼬리 같은 것이 가시처럼 말라 콕콕 찌르기도 하지요.
어찌 보면 볍씨의 자기보호 수단인데 봄철에는 이 눈이 잘 터야 좋은 모로 클 싹이 되는 거지요.
상자가 들어가고, 그 상자에 흙이 담기고,
다시 볍씨가 담기고, 빈 곳에는 사람이 볍씨를 손으로 채워줍니다.
그리고 이 상자가 옆으로 옮겨가 또다시 흙을 덮으면 하나의 모판이 완성됩니다.
예전에는 상자에 흙을 담는 것과 흙을 덮는 역할을 전부 사람이 했기에 시간이 많이 걸렸지요.
게다가 흙도 일일이 산에서 퍼다가 커다란 체에 한 삽 한 삽 쳐서 돌을 걸러내고 소독약을 뿌려 공기가 통하지 않도록 푹 덮어 보관했다가 상토흙으로 썼는데 지금은 상토흙이 이렇게 비료처럼 포장화되어 나오고, 파종기도 전자동화되어 시간과 품이 많이 단축되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사람이 해야 할 일은 있기에 바쁜 농촌에선 일손은 많이 필요하답니다.
이제 상병이 되어 말 군인 아저씨티가 팍팍 나는 우리 장남 키가 크니 높은 곳에 있는 것도 척척 내리고 흙과 볍씨가 들어가 무거운 모판 상자도 남들 두 배로 드네요.
삽질이 특기라더니 막혔던 봇물도 삽질 몇 번으로 툭 터놓고 뭐든 척척이라 남편도 은근 든든한 눈치고 저도 그런 아들이 내심 믿음직스럽고 보기 좋습니다.
사실 그동안 외박이나 휴가 나올 때면 집은 옷 갈아입고 가는 곳(?)쯤이었는데 이번에는 특별히 집안일을 돕겠다고 나와서 오자마자 이렇게 열심히 일하니 참 대견합니다.
한 판도 빠짐없이 물을 골고루 주고 난 후, 비닐을 덮어주고, 다시 보온을 위해 이부자리도 덮어줬습니다.
그리고 돌아가며 문도 만들어서 닫아 주었지요.
따뜻한 하우스 안에서 이제 볍씨들은 본격적으로 싹을 틔우고, 그리고 파랗고 이쁜 모로 자라날 거예요.
그동안에도 여러 차례 물을 줘야 하고, 소독약도 쳐야하고, 보온덮개를 덮었다 열었다 햇볕 관리도 해줘야 하고 일은 끊임없이 이어지겠지만 한 일주일 동안은 여유가 있습니다.
못자리를 끝내고 이번에는 저와 찰옥수수 씨 넣기를 했습니다.
찰옥수수는 밭에 씨를 직접 심으면 고라니와 비둘기들이 몽땅 다 쪼아먹어 버리므로 이렇게 못자리하는 것처럼 모판에다 하나하나 씨를 넣고 싹을 틔워 심습니다.
힘든 일은 아니지만 한 알 한 알 넣어야 하므로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 군인 아들 덕분에 시간이 배로 절약되었습니다.
시골은 어린아이의 고사리손도 요긴하다는데 군대에 가서 훈련과 운동으로 더욱 탄탄해지고 의젓해진 아들 덕분에 정말 흐뭇한 못자리가 되었습니다.
작년에 입대하기 전에도 아들 녀석과 일하는 틈틈이 사진을 찍으면서 제가 이끼가 너무 신기하다고, 자세히 보니 정말 우산 모양의 우산이끼라 했더니 아들 녀석, 시큰둥하게 그러더군요.
"엄마, 이끼는 어디에나 이끼(있기)마련이야.ㅋ"
하여튼 이 녀석이랑 말하다 보면 가끔가끔 실소를 터뜨리게 되는데 작년에 딸아이랑 나누던 대화도 생각나더군요.
딸 녀석, 군대가면 옷 나오지, 돈 나오지, 밥 나오지 했더니 아들녀석, 군대가면 옷 줘, 돈 줘, 밥 줘, 살려줘!!! 하더니 올해 집에 와서는 삽질의 달인 됐다는 둥 작업의 신이 되었다는 둥 말하는 수준(?)과 행동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얘는 솔이끼예요. 정말 소나무처럼 생겼죠?
가만 보면 자연의 것들은 정말 단 하나도 신기하지 않은 것들이 없답니다.
농사일도 그렇고요.
사람인 우리도 바로 그런 자연의 일부이죠.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의 힘을 빌어 살아가는 농촌 마을일, 나이가 들면서 점차 어려워지고 힘에 부치는데 이렇게 다 큰아들이 도와주니 정말 힘이 됩니다.
군대 가기 전, 일하는 틈틈이 스마트폰 들고 풀 뽑는다며 여기저기 드러눕던 철없던 모습에서 군대 생활하면서 휴가나 외박 나올 때마다 면회 갈 때마다 조금씩 의젓해지고 어른스러워지는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역시 남자들은 군대에 가야 하는구나...실감합니다.
아, 우리 아들 녀석 제가 이렇게 말하는 이 글 보면 또 그러겠네요,.
"여자도 군대 가봐야 해!!"
그나저나 한 달 후, 그때에는 찰옥수수심기랑 모내기 시작되는데 그때에도 우리 아들, 휴가 나와서 도와줄까요?? ㅋ
<취재: 청춘예찬 어머니기자 백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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