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생마을의 먹을거리 이야기

보리 막장 담았어요

삼생아짐 2023. 2. 27.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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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가끔 '내가 미쳤지...ㅠㅠ,
 
후회할 때가 있다.
 
 
나름 꽤나 합리적인 여자라고 자부하면서도 그렇지 못한 결과를 접할때.
 
 
예를 들면 1+1으로 홈쇼핑 옷 사서 라벨도 떼지 않은 새옷을 헌옷으로 분류해 버려야만 할 때...
 
갓김치, 총각김치, 김장 김치, 열무 김치 등을 다 먹지도 못하면서 잔뜩 담아서
 
여기저기 나눠 먹고도 남아서 저장고에서 해를 묵일 때...
 

 

그리고 이번에는 할 줄도 모르면서 장 담아 먹겠다고 메주 사서 엄두가 안 나 쳐다보면서 한숨 지을 때...

 

메주 한 말 정도만 사서 장 담으려 했는데

동네 형님이 한말 갖고 뭐 먹느냐며 최소한 두말은 해야 두고 먹는다고 하신다.

그래서 두 말을 사서 갖다놓고

쳐다보고 한숨

지나면서 한숨

잘려고 누워도 저 메주를 어찌하나 한숨...ㅠㅠ

 

준비하면서도 내가 미쳤지,

 
그냥 사다 먹을걸 왜 일을 벌렸나 후회도 하고,
 
서방님 걱정스러운지 혼자서 하지 말고 형님들한테 물어보고 하라고 옆에서 자꾸 채근하고... 

메주 샀으면 얼릉 장 담아야지 뭐하고 있느냐며 성화 성화...

 

 

 
 
 
몇 년 전 메주 사서 장담는다고
 
동네 형님한테 소금 얼마 넣어요,
 
메주 어떻게 손질해요,
 
보리는 얼마 해요,
 
엿기름은 어떻게 만들어요...등 등 자꾸만 물어보니까 동네 형님이 여러번 설명해주다 답답하신지
 
아예 '항아리 가져와요!!!' 하면서
 
장을 담아다 주셨는데 너무 맛나서 친정어머니, 시어머니 한통씩 드리고도 행사에 쓰고,
 
아이들도 퍼주고 3년 정도 잘 먹었다.
 
그런데 그 장이 다 떨어져가서 이번에 새로 장 담으려고 시도...
 
 
 
메주 두 말을 사 놓고 여기저기 형님들한테 물어보고,
 
유튜브도 찾아보고, 형님들을 초청해서 드뎌 오늘 보리막장 담았다.
 
 
 
 
 
엿기름은 하루 전에 물을 부어 불렸다가 
 
고운 물만 받아서 솥에 끓여준다. 
 
 
메주는 씻어서 햇볕에 하루 말렸다가 
 
쪼개서 건조기에서 다시 말리고 
 
방앗간에 가져다 주고 메주 가루로 빻아왔다. 
 
 
 
 
국멸치 볶아 무랑 대파, 양파 넣고 끓여 육수 내리고
 
(멸치 육수 낼 때 멸치를 미리 볶아서 넣어야 비린내가 안 난단다.)
 
 
 
 
 
 
메주 일부는 방앗간에서 빻지 않고 쪼개어놓았다가 육수에 적셔 으깨놓고,
 
(메주콩알이 보여야 장이 더 맛난 듯)
 
 
 
 
 
보리쌀도 하룻 밤 넉넉한 물에 불렸다가
 
물을 넉넉히 붓고 죽처럼 밥을 지어야 한다. 
 
 
 
막장에는 고춧가루가 아닌 고추씨 빻은 것을 넣어야 텁텁하지 않다고 해서
 
방앗간에서 고추씨도 빻아다 놓고...
 
 
 
 
 
베테랑 형님 두 분 초청해서 드디어 보리막장을 담았다.
 
 
 
 
 
 준비한 재료를 몽땅 넣고 버무려 주면 된다. 
 
 
메주두말 가루로 빻으면 약 10킬로에
 
보리쌀 4킬로, 엿질금 두봉, 소금 5킬로, 고추씨 두 봉지, 
 
그리고 비밀이지만 소주 한 병이 들어갔다. ㅋ
 
 
항아리에 담는건 하루 지난 다음에 넣어야 소금이 골고루 녹는단다. 
 
 
 
 
하는 김에 약 30년 전에 동네 형님이 담아주셨는데 항아리에 넣어두고 잊어버렸던 된장 다시 손을 보았다. 
 
콩 1킬로를 압력솥에 푸욱 푹 삶아서 믹서기로 갈아 섞어 다시 항아리에 담았다. 
 
이 장은 그냥 먹어도 되지만
 
무장아찌 등을 넣어도 좋단다. 
 
 
 
앞으로도 항아리에 옮겨 담고, 윗부분 말리고, 관리하는 것이 남았지만 담고 나니 속이 다 시원...ㅋㅋ
 
 
 
시어머님께 장 맛 들면 드린다고 큰소리 쳤는데, 어쨌든 우리 집에서 담은거니 우리집 장 맞겠다.ㅋ
 
 
형님들은 자기 혼자서 메주 다섯 말치 된장 담고, 또 다섯말씩 막장 담고, 고추장 담고 그렇게 해마다 하시니 내가 얼마나 한심해 보일까나.
 
 
항아리 소독해주고, 씻은 메주 건조기에서 말려주고, 방앗간에 가져다 주고 빻아오고, 더운 물 끓여주고 심부름 하던 울 서방님, 이거 우리 인생의 마지막 장이라고 한다.
 
 
형님들, 장은 원래 묵여가면서 먹는거라고 내년에 또 해야 한다고 하신다.
 
형님들이 도와 주시니 넘 좋아서 내가 미쳤지 하던 생각은 다 달아나고, 내년에 또 담고 싶어진다.ㅋㅋ
 
 
 
이렇게 한 번 준비하고, 옆에서 보면서 해보니 이제 할 수 있을 듯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