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서울로 회의 간 날이면
제가 소 밥을 줘야하는데...
새벽에 일어나서 밥을 줘야하니 넘 춥고 어설퍼요.
단단히 중무장했죠.
일단 두꺼운 수면양말을 껴신고요......
(곰발바닥 같긴 하지만 어쩌겠어요, 발 시린것보담 낫죠.)
내복입고, 스웨터입고, 그 위에 남편이 소 밥 줄때 입는
두꺼운 오리털파커도 껴입고
모자도 쓰고 장갑도 껴요.
그럼 완전히 곰 한마리가 되는거죠.
(아, 장갑하니깐 문득 울 최후의 보루 말이 생각나네요.
이번 설 명절에 친정이랑 시댁을 방문하는데...미처 선물 준비를 못 했어요.
그래도 명절인데 어떻게 빈손으로 가냐고 제가 그랬더니
울 최후의 보루, 장갑끼고 가면 된대요.
저더러는 가죽장갑끼고 자기는 소 해줄 때 끼는 목장갑끼고 가면 된다네요.
어이없어......
결국 마을 전자상거래로 판매하던 늘푸름홍천한우육포 셋트를 챙겨서 양가에 선물했죠.
평소에 치아가 약하다고 씹는 거 힘들어하시던 울 아버님
육포 보시더니 엄청 좋아하세요.
딱딱하지도 않고 맛있다고 받자마자 뜯어서 술안주 하셨죠.)
역시나......새벽은 춥네요.
소들 수염에 하얗게 성에가 매달렸어요.
우선 20킬로그램짜리 송아지 사료를 번쩍 들어서
소 먹이통에 한 봉을 다 쏟아넣어요.
그럼 송아지들이 오며가며 진종일, 하루종일, 왼종일
씹어먹고, 깨물어먹고, 배고프면 먹고, 자기전에 먹고, 놀기전에 먹고, 심심하면 먹고
먹고 먹고 또먹고
쑥쑥, 왕창 크는거죠.
작년 여름에 태어난 송아지들......올 겨울새 열심히 먹고, 참 많이 컸네요.
그동안 구제역균을 옮길까 두려워 녀석들 곁에도 안 갔었는데
(마을 입구 들어올때 사람들한테도 소독약 뿌렸는데 우리 소들 생각해서 그거 다 맞았죠.)
제가 오랫만에 다가가니깐
웬일이냐는 듯 슬슬 다가와서 킁킁거려요.
이제 첫새끼가 들어가기 시작한 어미소들......
먹이를 먹으면서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데
어머나,세상에!!!
따악 웃는 표정이지 뭐예요.
가끔 소가 웃는다는 표정 쓰는데, 정말 웃네요.
밤사이 물통의 물이 꽁꽁 얼어버려서
뜨거운 물을 일일이 퍼다 줘야해요.
지하실에서 뜨거운 물을 빼어 물통으로 여러번 날라야 하는데...
이 무게가 장난이 아녜요.
팔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어깨도 아프고......에구궁소리가 절로 나오죠.
자기가 무거운 물은 날라다주겠다고 꼬옥 깨우라고 큰 소리 치던 민재넘...
제가 소 밥을 다 주고 들어올때꺼정도 꿈나라에서 헤매요.
밥 먹으라고 깨웠더니 왜 자기를 안 깨우고 엄마 혼자 했냐고......
무진장 미안해해요.
녀석, 개학하자마자 육상연습을 해서 근육통이 온건지 몸살이 온건지
온 몸이 아프다고 투덜거리더니
그래도 엄마를 돕겠다고 말만이라도 해 주니 고맙네요.
결국......오늘아침엔 일어나서 물을 다 날라줬어요.
무거우니깐 나르면서 제가 안 보는새 슬슬 쏟아가면서 갖다 주네요.
자랑스러운 우리 아들 사진좀 찍자고 했더니...
(무거우니깐 얼릉 찍으래요.)
녀석덕분에 오늘 아침은 그래도 훨씬 수월했네요.
그래서 점심에 녀석이 좋아하는 순대국밥 사줬어요.
역시나 식당엔 손님이 없어요.
순대국밥집 아주머님, 순대국 장사를 접어야 할 듯 싶다고..
내장이랑 순대를 구할 수가 없다네요.
어떤 메뉴가 좋을지 고민중이라고 하시네요.
그래도 한겨울보담은 조금 손님이 드는데...
재료를 구하기가 어렵다고 하셔요.
역시 구제역 여파는......우리 생활 모든 곳에 영향을 미치네요.
그나저나......
울 최후의 보루, 그저께 올라가서 아직꺼정 회의중인데...
오늘 못 올지도 모른다고 전화해서 제가 팔짝팔짝 뛰었네요.
보나마나 울 최후의 보루, 와서 그러겠죠.
"거봐, 평소에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겠지??
서방한테 잘~~해!! "
해가면서요.
그러게요.
평소에 소 밥 주면서, 빨래도 널어주고, 쓰레기도 태워주고
음식물 찌꺼기통도 비워주고...
다 해줬는데...
울 최후의 보루가 집에 없으니 일이 두배로 많아요. 흑흑......
지금 이 글을 쓰는데도 팔이 후들후들거려요.
좀있다 집에가서 또 소밥줘야 하는데...
구제역으로 자식같던 소와 돼지와 사슴과 양과......
모든 것을 묻어버린 축산농민들을 생각하면
이렇게나마 힘들어도 소먹이를 줄 수 있다는게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감사해야하는데...
이렇게 엄살을 부리니 죄송하기 그지없네요.
이제 2차 예방접종을 마치고
그나마 조금이나마 마음이 놓이건만...
어서빨리 구제역 균이 모두 사라져서
축산농민들 근심도 사라졌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구제역 피해를 입으신 축산농민들이 하루빨리 실의를 딛고 일어설 수 있도록
지원책이 시행되었으면 좋겠구요.
이번 겨울은 정말.......유난히도 길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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