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봄, 아직 땅이 녹기도 전에 땅 색깔과 거의 같은 색으로
희끗 올라오는 녀석들이 있습니다.
봄 노래에 대표적으로 등장하는 달래, 냉이, 씀바귀...
봄나물의 대표적인 냉이는 푸른빛이 보이기 시작하면
이미 뻣뻣하게 세어져 버린 것이랍니다.
그래서 냉이를 먹을 수 있는 시기는 극히 짧습니다.
냉이를 봄 향기를 불러오는 대표적 나물로 꼽고 있지만
이 녀석도 농가에서는 씨 뿌리지 않아도 텃밭 여기저기에 불쑥불쑥
고개를 내미는 골치 아픈 잡초에 속합니다.
물론 눈 밝고 손길 바지런한 아낙의 눈에 띄면
향긋한 봄나물이 되겠지만요.
나상구, 나생이, 한의약에서는 제채자라 부르기도 한다는데,
이질, 설사 등에 좋고 눈을 밝게 하며
본초강목에서는 냉이가 오장을 튼튼하게 하고 노화의 주범인 활성산소를 잡아주어
봄철 춘곤증을 예방하는데 좋다고 하네요.
냉이는 자체의 향 덕분에 된장을 풀고 뿌리째 국을 끓여 놓으면
나른하고 피곤한 봄철, 구수하고 향긋한 맛이 입맛이 절로 돌게 하죠.
단, 이파리 사이에 흙과 돌이 잘 끼여 있기 때문에
손질할 때 두 배로 정성을 들여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긴 합니다.
냉이튀김, 냉잇국, 냉이나물, 냉이 효소, 장아찌 등으로 요리해서 먹는데,
가정에서 주부들이 가장 쉽게 냉이를 먹는 방법은 역시 된장국입니다.
감자와 통멸치를 넣고 끓인 구수한 냉이 된장국 한 그릇이면
가족들이 밥상에 둘러앉은 이른 봄,
더할 나위 없이 고향의 맛을 진하게 느낄 수 있는 봄맛이라 할 수 있겠네요.
밀가루에 소주나 맥주를 넣어 반죽하여 바삭하게 튀긴 냉이튀김은 별미라는데
아직 직접 해 본 적은 없고 지인에게서 맛나다는 말을 듣고
한 번 해보시라고 올려봅니다.
그러나 이 냉이는 제때 캐어 먹지 않으면
냉이에서 꽃대가 올라와 하얗고 자잘한 예쁜 꽃과 노란 꽃을 피우는데
이 꽃이 지고 나면 그 꽃만큼의 냉이들이 밭 어디선가
잡초 취급받으며 이듬해 불쑥불쑥 솟아난다 생각하심 될 거예요.
본격적인 봄꽃들이 피기 전에 올망졸망 여기저기 피어나는 냉이 꽃은
이른 봄부터 우리들의 눈을 즐겁게 하죠.
꽃이 보기 좋다고 이 냉이를 제거해 주지 않으면
그 다음 해 여기저기 분명히 잡초로 돋아나는 냉이들의 모습을
손 놓고 지켜볼 수밖에 없답니다.
아, 냉이 꽃 좋아하시면 그냥 두셔도 좋습니다.
상추 무리 사이에 시침 뚝 떼고 당당히 자리 잡은 이 녀석을 아시나요?
아마 봄에 올라오는 잡초들 중에 가장 당당하게 세력을 펼치는
녀석들이 바로 이 녀석들일 겁니다.
밭이나 하우스 안이나 논두렁이나
빨리도 크고 많이도 퍼진 이 녀석들의 이름은 명아주.
지역에 따라서는 는장이, 는쟁이, 능청이라고도 부르는데요.
저희 지역에선 능청이라 부르는데
정말 능청스럽게도 번식력이 어마어마합니다.
이렇게 뿌리째 뽑아주어도 도로 살아나는 끈질긴 생명력이
가히 잡초의 으뜸이라 할 만합니다.
물론 줄기가 끊어지면 그곳에서 또다시 새로운 싹이 슬며시 올라오죠.
이 녀석들이 세를 불린 곳에서는 다른 잡초들은 감히 고개도 못 내밉니다.
게다가 제때 뽑아주지 않으면 키가 2미터까지 자라서
사람 키보다 더 커져 능청이 나무가 되어버린다고 할 정도입니다.
저희 찰옥수수 밭에도 하우스 안에도 감자밭에도 어김없이 돋아나는
이 녀석들은 영어로는 goose foot(거위 발)이라고 부르는데
아마도 이파리 모양이 거위 발을 닮았기 때문이라네요.
어렸을 때에는 나물로 먹기도 하고
열매는 가루로 만들어 먹거나 사료로 이용한다는데
전 세계에서 가장 분포역이 넓은 다섯 가지 식물 중 하나라네요.
그러니 그렇게 번식력이 좋을 수 밖에요.
이렇게 생명력 강하고 흔한 능청이를 보며 제가 진저리를 치는데
생전에 저희 집에 다니러 오셨던 아버지가
능청이도 먹는 거라면서 뜯어 주시더군요.
어렸을 때 이파리와 줄기째 뜯어 된장을 풀고 국을 끓여 먹기도 하고
초고추장에 묻혀 먹기도 한다는데,
데쳐서 들기름과 집 간장에 묻혀 메밀 총떡에 소로 넣었더니
완전 색다른 맛이 나는 것이
그동안 능청이를 구박했던 게 미안해지기까지 하더군요.
게다가 이 능청이는 다 자랐을 때 뿌리째 캐어
줄기를 다듬고 말려서 그 대궁으로 지팡이를 만든다는데
생각보다 이 지팡이의 가격이 꽤 고가였습니다.
경상도 문경에 갔을 때 이 명아주 지팡이를 판매하는데
명아주로 만든 지팡이의 이름은 '청려장'
가벼우면서도 단단하여 예로부터 '효도 지팡이'로 불렸다는데
판매하는 가격을 보니 개당 6만 원 정도나 하더군요.
한 세트 두 개에 자그마치 12만 원!!
우리나라에서는 통일 신라 시대 이전부터
임금님이 직접 장수하는 노인들에게 청려장을 하사했다고 하는데
92년부터 보건복지부에서도 어버이날이나 노인의 날이 되면
100세가 되는 어르신들에게 청려장을 선물한다네요.
게다가 이 명아주는 지니고만 있어도 심장에 좋은 식물로
안동 도산서원에 가면 퇴계 선생이 사용하던 청려장이 보관되어 있다고 하니
그동안 질기고 억세다고 구박했던 능청이가
어쩌면 농가의 새로운 고소득 작물이 되지 않을까 싶은 게
이 능청이만 제대로 길러 지팡이를 깎고 싶은 생각마저 들 정도였습니다.
본초강목에는 명아주 줄기로 만든 지팡이를 짚으면 중풍에 걸리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이질, 장염, 종기, 중풍, 치통에 좋고
꽃이 피기 전에 어린잎과 줄기를 잘라 햇볕에 말려 달여 먹으면
위를 보호하고 열을 내리게 하며, 해독 작용이 있어
독벌레에게 물렸을 때 이 물을 바르면 낫는다고 하네요.
이 정도면 그동안 잡초라고 구박했던 능청이가
정말 다시 보이시지 않나요?
다시 보아야 할 우리 잡초
요번 회차 마지막은 비름입니다.
비름은 참비름과 쇠비름 두 가지가 있는데요.
제가 시집 오자마자 시어머님이 그러시더군요.
일 년에 비름나물 세 번만 해 먹으면 더위 먹지 않는다고요.
그런데 이 비름도 참으로 징글징글하게 많이 나오고
또 죽어라 뽑아 놓아도 죽지 않고 살아나며
조금만 자라면 잘 뽑히지도 않고 뚝뚝 끊어져버립니다.
그리고 그 끊어진 마디에서 세배 네 배로 또 다른 비름이 솟아납니다.
게다가 새끼손가락 마디보다 작던 이 녀석들이
가을이 되면 능청이만큼이나 키와 덩치가 자라
2미터가 넘으며 덩치 또한 우람해져서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뽑을 수도 없습니다.
비름나물 먹겠다고 몇 군데 빼놓고 놓아두었다가
고라니가 새끼 쳐 나갈 정도로 밀림이 되어버릴 정도죠.
그렇지만 이 비름을 먹는 나물로 생각하면 그렇게도 신통할 수가 없습니다.
몇 뿌리 살려두었다가 귀한 손님이라도 오시면
얼른 밭으로 달려가 뜯어다가 데쳐서
초고추장이나 된장, 혹은 간장 등에 참기름을 넣고
조물조물 무쳐내면 요긴한 한 끼 반찬이 되니까요.
사실 마트에 가보면 이 비름나물이 다른 나물들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거래되는 걸 볼 수가 있습니다.
시금치 한 단에 1,200원 정도인데
비름나물 한주먹에 4,000원 정도 하니
거의 세배 가격이죠.
비름에는 단백질과 칼륨, 각종 비타민 성분이 다양하게 함유되어 있고
해열과 해독작용이 뛰어나며 종기를 쉽게 아물게 하는 효과도 있다 네요.
시어머님이 말씀하신 일 년에 비름나물 세 번만 먹으면 더위 안 먹는다는 말이
과학적으로 증명되는 순간, 어르신들의 지혜에 다시 한 번 감탄하게 됩니다.
또한 비름의 씨는 설사를 멈추게 하고 부종을 완화시켜주며
여성들의 생리불순을 치료하고 비름 우려낸 물을 주근깨,
여드름이 난 피부에 발라주거나
무좀에 묻혀주어도 좋은 효과를 볼 수가 있다고 합니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피를 맑게 하거나
만성 대장염이나 이질이 발생했을 경우 비름을 복용했고
'채근담'이라는 고서에서는 비름의 성질이 냉해 염증을 가라앉히고
피부병, 눈병, 종기에 좋다고 했답니다.
비름을 먹으면 오래 산다고 하여 일명 '장명채'라 부르고
한의학에서는 '마치현'이라 불렀다네요.
말의 이빨 모양을 닮았다는 뜻이랍니다.
한때 모 방송 프로그램에서 대통령의 건강과 장수 비결로 비름나물을 꼽을 정도로
비름나물의 우수성은 알게 모르게 많이 알려져 있는데요
참비름 말고 마치 지렁이의 몸통처럼 시뻘건 줄기를 가진 쇠비름도
최근 몇 년새 샐러드나 효소의 원료로 많이 이용되는데
고들빼기와 쇠비름을 매실액으로 버무려낸 샐러드도
꽤 괜찮은 맛이었습니다.
쇠비름도 씹어보면 생각보다 달큼한 맛이 납니다.
쇠비름은 잎은 파랗고 줄기가 붉으며 꽃이 노랗고 뿌리가 희며 씨가 까매서
다른 말로는 오행초라고도 부른다는데
허준의 동의보감이나 세종대왕의 향약집성방 같은 고서에는
쇠비름의 효능이 다양하게 나와 있습니다.
특히 필수 지방산인 오메가 3가 풍부해
서양에서 샐러드의 재료로 많이 사용했다고 하네요.
그러고 보면 우리가 잡초라고만 여겼던 이런 식물들이
정말로 그 맛과 약효가 뛰어난 나물이 된다는 것입니다.
특히나 요즘같이 상업농으로 전환되어
오이, 고추 같은 시설채소나 찰옥수수, 가지, 호박 등 특정 작목 등을 재배하면서
필요 없는 잡초로만 인식했던 이런 잡초들이
의외로 소중한 우리의 보약이 된다는 생각, 들지 않으세요?
돌아보면 돌아볼수록, 찾아보면 찾아볼수록
참으로 신기한 약초이자 맛난 나물들이 우리 주변에는 지천으로 깔려있는데
그저 잡초라고만 인식하고 괄시한 것이 새삼 반성되는 순간입니다.
다음 회에는 잡초도 보약이다(3편)
쑥과 개망초, 왕고들빼기와 고들빼기를 다뤄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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