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국외)/스위스

[스크랩] 스위스 루체른 `빈사의 사자상`에서 본 진정한 군인 정신

삼생아짐 2015. 7. 2.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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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누구나 한번쯤 읽어 보았을 동화 '알프스 소녀 하이디'

 


스위스를 여행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아름다움과 깨끗함에 반해 다시 가고 싶은 나라로 꼽는 곳이다.

 
유럽 대륙의 중앙에 위치하고, 국토의 70%가 산으로 이루어진 산악국가인 스위스는 유럽의 3대 하천의 발원지로 꼽히고 있으며,

 


산과 강, 호수가 아름다워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에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해마다 방문하고 있는 대표적인 관광국가이다.

 

 
스위스의 아름다운 호수는 빙하기에 알프스에서 내려온 산악빙하가 만든 설상곡 자리에 물이 참으로써 형성된 것이며, 이 호수마을로 가기 위해 루체른이라는 도시에서 유람선을 타야 하는데 아름다운 호수마을과 리기산을 가기 전에 잠시 루체른에 들를 기회가 있었다.


 

 

루체른은 로이스(Reuss)강을 경계로 남북으로 나누어지는데, 북쪽의 중앙역과 구시가지는 한때 우리나라 예능 프로그램인 '꽃보다 할배'에 잠시 나오기도 했던 곳이다. 

 


 

루체른에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긴 나무다리인 카펠교가 있고, 또 하나 꼭 들러서 봐야 할 유명한 곳이 바로 빈사의 사자상이다. (카펠교와 구시가지, 리기산은 다른 기회에 소개해 드립니다.)


 

 

잠시 이야기가 딴 데로 샜지만...항상 그런 의문을 가졌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은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일게다.

문득......생각해보면 내가 죽는 것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다는, 혹은 그 죽음을 지켜보아야 한다는 사실이 더 슬플 듯 싶다. 그 대상이 부모이든, 자식이든, 남편이든, 친구이든, 혹은 연인이든간에......

그래서...언제나 슬픔은 남겨진 사람의 몫이라 하지 않는가?

 



지금은 관광대국으로서 세계에서 제일 잘 사는 나라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는 스위스지만, 예전에는 국토의 70%가 산악지대라 제대로 농사를 지을 수도 없고 무역과 산업이 발달할 기틀이 없어 먹고 살기도 벅찬 악조건 속의 가난한 국가였다.

또한, 중세 스위스의 역사는 지배자인 합스부르크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끊임없는 항쟁의 역사였으며, 그 과정에서 자연히 수많은 전투를 겪은 베테랑들이 양성되었고, 험준한 환경 속에서 전투를 겪으며 단련된 이들은 자연히 타지로 나와서도 막강한 힘을 발휘하여 이탈리아, 프랑스 등 주변국가에 용병으로 진출해서 돈을 벌어올 수밖에 없었다.  스위스가 용병업으로 생계를 꾸려나가고 국가사업으로까지 유지시켰던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그리고 스위스의 용병들에게는 의리와 용맹함, 그리고 변하지 않는 충성심이 있었다.  

 

 

 

 

프랑스 대혁명때 이들은 루이 16세와 마리 앙뜨와네트를 지키다가 전멸하고 만다. 
스위스 용병들의 군인정신을 가장 잘 말해주는 사건이 바로 프랑스 대혁명때의 사건이다.

파리시민들의 혁명이 일어났을 때, 왕을 지켜야 할 루이 16세의 근위대는 모두 도망가 버리고 만다.
체념한 루이 16세는 고용했던 스위스 용병들에게 떠나도 좋다고 말했지만, 그들은 떠나지 않고 786명 모두가 장렬하게 싸우다 전사했다. 그들이 떠나지 않은 이유는 그들의 품에서 나온 쪽지(유서)에 답이 있었다고 한다.

그들이 목숨을 구하기 위해 떠날 경우 신의를 잃어버리게 되고, 그들의 후손에게는 다시는 용병으로서 고용될 기회가 없을 거라는 말...그럼으로써 그들은 모두 신의를 끝까지 지키기 위해 끝까지 남아 싸웠고 결국 전사하고 만다.

 


스위스 루체른에서는 이 사건을 빈사의 사자상으로 기념하고 있다.

루체른 호프교회 북쪽의 작은 공원 안에 덴마크 조각가 토르발센이 자연석을 쪼아만든 것으로 1821년 독일 출신의 카스아호른에 의해 완성되었다.


사자가 지키고 있는 것은 부르봉왕가의 상징인 백합무늬가 있는 방패이고, 사자의 등에는 창이 꽂혀 있다. 사자상 밑에 벽에는 희생당한 용사들 786명의 이름이 적혀있다.

눈물을 흘리며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사자의 모습은 스위스 용병들을 상징하며, '톰 소여의 모험'등 명작을 남기고 '침대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장소다. 80%이상이 거기에서 사망하니까' 등등의 명언을 남긴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이 사자기념비를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도 감동적인 바위"라고 표현했다.

 

 



스위스 용병들의 의리와 충성심은 그 후로도 전 세계에 인정을 받아 지금도 교황청, 즉 바티칸시티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바로 스위스 용병(Reisläufer, 라이슬로이퍼)들이다.

 

라이슬로이퍼는 '전쟁에 나서는 자'라는 뜻.

 

중세 스위스 주정청에서 조직한 후 근세까지 유럽에서 맹위를 떨쳤고, 현대까지도 맥이 이어지고 있는 용병부대이다. 프랑스의 외인부대와 더불어 용병의 전형으로서, 지금도 용병 하면 많은 이들이 스위스 용병을 떠올린다고 한다.

유럽역사를 보면 스위스 용병들의 의리와 책임감, 명예로운 죽음, 그리고 용감함에 대해 종종 듣게 된다.


처음에는 교황청 근위병들도 여러 나라 출신으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1527년 벌어진 사코 디 로마(로마 약탈) 당시 스위스 용병들은 카를 5세의 군대에 맞서 교황과 로마를 사수하고자 치열하게 싸웠지만,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당하고 말았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용병들과는 스위스 용병들의 충성심은 불변하여 42명만이 살아남는 패전 속에서도 끝까지 자신의 고용주인 교황을 위하여 싸웠다고 한다. 이 영웅적인 활약으로 인해 스위스 용병은 체면을 살릴 수 있었고 바티칸에서는 지금까지도 스위스 용병을 고용하며, 매년 로마가 함락당한 5월 6일마다 기념식을 거행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교황청을 지키는 스위스 근위병은 110명으로 모두 남성이며 복무 기간은 최소 2년을 기준으로 연장 가능하다고. 근위병의 조건은 만 30세 미만의 가톨릭 신자로 미혼이어야 하고, 키는 174cm 이상이어야 한단다.

다만 근위병이 된 이후에는 결혼할 수 있다고.

한편 교황청 근위병에게는 매달 1,800스위스프랑의 월급이 지급되고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약 140만 원 정도). 스위스에서는 이제는 스위스 국민이 외국 군대에서 근무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있지만 유일하게 교황청 근위병은 허락하고 있단다.
 

월급이 좀 짜다(!)는 생각이 든다.
 

아, 신앙이나 명예가 그 박한 보수를 견디게 하는건가?...싶기도 하다.

어떤 전쟁에 나가든지 스위스의 용병들은 최후까지 고용주를 위해 목숨을 걸고 끝까지 싸움으로써 그 명예를 지켜왔고, 그 죽음은 슬프거나 헛된 것이 아니라 명예로운 것으로 여겨져 왔다고 한다.

그러나....사랑하는 남편을, 자식을, 형제를 남의 나라 전쟁터에 나가 대신 싸우고 목숨을 희생하는 그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여자의 입장에선 가장 슬픈 일이었을 듯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위스 용병들의 그 충성과 희생을 발판으로 삼아 오늘날 바로 스위스가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로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어떤 이유로든 전쟁은 일어나선 안된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든 일어난 전쟁에서 또한 져서는 안된다.

나라의 힘을 키우는 것, 그리고 후손을 위해 조상들이 물려준 나라를 부강하게 발전시키는 것,

세계에서 유일하게 분단국가로 남아 있는 우리나라에서 한번쯤 되새겨볼 만하다.





 

<취재: 청춘예찬 어머니기자 백경숙>

 

출처 : 청춘예찬
글쓴이 : 굳건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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