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청 SNS서포터즈

묵호의 논골담길에서 '희망'을 보았습니다

삼생아짐 2014. 3. 20. 02:28
728x90

 

처음 강원도에도 벽화마을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예전에 보았던 벽화마을과 무어 그리 다르겠나...라는 선입견이 들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서울 홍제동에 있는 개미마을도 가 보았고, 저 멀리 남쪽지방의 통영 동피랑 벽화마을까지도 가보았습니다.

 

각 마을마다 철거 위기에 놓인, 오래되고 낡은 벽들에 동화처럼 아름다운, 영화속 주인공들 처럼 멋진, 그런 그림을 그려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활기찬 마을로 만들었던 곳이라 묵호의 논골담길도 그렇게 주민들의 협조로 새로운 볼거리를 하나 만들었구나...라고 생각했었는데...

 

 

논골담길이 있는 묵호등대에 도착하는 순간,

 

 

저마다 목에 명찰을 거신 어르신들이 나오셔서 열렬히 환영해 주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부녀회 부회장을 맡고 계신 이순자님이십니다.

 

이 마을 가구수는 약 60여 가구, 그 중 절반 정도가 떠나가고 그 남아계신 어르신들중 서른 한 분이 마을 해설사로 활동중이라 하셨습니다.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찍고 계신 어르신, 포즈가 남다르죠?

 

64년째 이 논골마을에 거주해오고 계신 김승수 마을 해설사이십니다. 이 논골마을의 산증인이라 할 수 있지요. 논골길을 걷는 동안 내내 길동무가 되어 주셔서 논골길의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상세하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묵호등대 담화마을(흔히 논골담길이라 부르는)은 그 옛날 '미워도 다시 한번'이라는 영화의 촬영지였던 묵호등대를 정점으로

 

논골 1길(현재의 묵호를 배경으로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과정의 이야기들, 논골의 밤, 어시장의 풍경),논골2길,논골3길(과거의 생활상에 대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논골상회,장화, 원더우먼등의 이야기)

 

그리고 등대오름길(우리의 묵호) 이렇게 크게 세가지 주제를 지닌 네 갈래길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각 길마다 각각의 주제로 벽에 그림을 그렸는데, 그 주제가 동화속의 주인공이나 만화캐릭터가 아닌 이곳 묵호논골에 살던 사람들의 삶의 애환과 역사, 그리고 소박한 희망 등을 담고 있다는 것이 다른 벽화마을과의 큰 차이점이었습니다.

 

 

논골1길은 빨간다라 주제로 시작합니다.

 

 

"다라야 다라야 빨간 고무다라야"

 

그 옛날 명태며 오징어가 흔하게 잡히던 시절 이곳 논골길에 살던 사람들은 집집마다 빨래를 널듯 덕장을 차렸고 남정네들이 바다에서 내린 물고기들을 지게에 지고 이 길을 올랐다면,

 

여자들은 바로 이 빨간 고무다라에 물고기들을 이고 고갯길을 올랐습니다.

 

 

논골담길이 시작되는 입구에 그려진 원더할매는 바로 그 빨간 고무다라를 머리에 이고 오르던 어머니들의 자화상이었고,

 

 

그 어머니들은 원더할매가 되어서라도 무거운 짐을 머리에 이고 가파른 논골길을 오르는 힘든 과정을 이겨내고 싶었던 게지요.

 

 

무거운 다라를 이고 올라가는 좁고 가파른 길에 지금의 에스컬레이터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는 이루어질 수는 없지만 꼭 이루고 싶었던 그런 절박한 꿈들이 벽화로 남아 있습니다.

 

 

저희는 위에서부터 내려가보는 길이었지만, 저 멀리 묵호항이 보이는 곳에서부터 무거운 물고기를 머리에 지고 오르던 할머니들에게는 그 길이 바로 삶의 무게를 견뎌야 했던 인내의 길이자 외로움의 길이었고,

 

 

가족에 대한 사랑의 길이었으며, 살아내야 할 삶의 무게와 막막함과 신산스러움 가운데 한가닥 실낱같이 가늘더라도 놓지 말아야 할 희망의 길이었던 거지요.

 

 

그래서 논골담길 입구에 세워진 이정표에 쓰여진 단어들은 우리가 흔히 느끼는 관념어들이 아니라 바로 논골지역 주민들의 마음속을 떠나지 않던 삶의 여정이었습니다.

 

 

 

 

 

묵호논골길에는 실제 거주하고 있는 주민분들의 집 사이사이 이렇게 버려진 터들이 많습니다.

사람이 살지 않는 빈 집들도 많고요.

 

 

이렇게 그림이 잘 그려진 이 건물은 그 당시 실제 마을의 유일한 가게였던 곳이랍니다.

오르고 내리는 그 길이 너무 힘들어 마을 주민의 대부분은 이 가게를 이용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하네요.

 

하지만 이곳의 주인도 떠나가고 빈 집만 남아 그 당시를 추억하게 하고, 지나면서 보니 자칫 붕괴의 우려가 있어 조금 조심스럽기도 합니다.

 

 

 

거주하고 계신 주민분들 댁 앞마당에 간간이 널려있는 물고기들을 통해 바로 그 옛날, 묵호논길에 가가호호 차리어졌던 덕장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묵호항과 접해 있는 이곳 논골 마을은 1941년 묵호항이 개항하고 풍어로 명태가 많이 나던 6,70년대 시절,

 

 

전국의 선원들을 비롯한 외지인들이 많이 모여들어 천막을 치고 살아가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자리잡은 작은 땅 한두평이 조그마한 집으로 변하여 논골길에 층층이 세워지고,논골동네를 이루었다고 하네요.

 

 

묵호가면 개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라는 말이 한때 선원들 사이에 떠돌았다지요?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 한달에 한번씩 계산을 보면 목돈을 만지고, 피곤한 삶에 막걸리라도 한 잔 걸칠 참이면 취중에 주머니에서 담배를 빼다 돈이 뚝 떨어지고, 그렇게 흘린 만원짜리가 길가에 수두룩하고 그 돈에 묻은 비린내에 끌려 강아지들이 돈을 물고 다녔다는 이야기랍니다.

 

 

어버린 만복이를 찾는다는 말은 결국 경기가 좋았던 시절에 대한 주민분들의 그리움이 담겨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한때 호황을 이루었던 물고기 잡이 덕에 주민들은 묵호항에서 닻을 내린 배들에서 물고기를 한다라, 혹은 지게 하나에 옮겨받아 각자의 집으로 날라 덕장을 꾸려갔던 것이지요.

 

 

리어카를 끌고 가 배에서 내린 물고기들을 지게에 옮겨 지고, 그 지게를 지고 논골길을 오르노라면 지게에서 떨어진 물이 흙을 적셔 다락논 만들듯이 물이 층층이 차고 넘쳐 흙이 몰리고  

 

 

흙이 젖어들어 논처럼 온동네를 질흙을 만들어 좁은 골목길은 논처럼 질창으로 변하고, 그 길을 다니려면 장화없이는 다닐 수가 없어 '여자(마누라)없이는 살아도 장화없이는 못 산다'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하네요.

 

 

논골길에 장화는, 그러므로 빨간 다라 만큼이나 논골 주민들에겐 필수품이었던 것이지요. 

 

 

지금은 70이 넘으신 어르신들만 계시지만 그 옛날, 이곳에도 아이들은 있었습니다.

 

 

논골길을 걷는 동안, 비료 한 푸대를 저 아래에서부터 지고 올라오셨을 마을 주민 한 분을 보았습니다.

자동차도, 자전거도, 심지어는 손수레 조차 끌고 다닐 수 없는 좁고 가파른 논골길

 

 

삶의 무게는 여전히 힘들게 남아 있습니다.

아무리 기계가 발명되고 생활에 편리한 운송도구가 생겨났다 한들 이곳 논골길에서는 여전히 무용지물입니다.

 

 

그러므로 그 옛날, 연탄 한 장을 나르기 위해 온 마을 주민들이 동원되어 손에서 손으로 전달하던 그 그림은 바로마을 주민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협동정신의,

아름답지만 처절하기까지한 논골주민들의 삶의 단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고가자,고단한 삶, 애써 이기려 하지 말고 지고가자...

내려 놓을 수 없어, 포기할 수 없어 살아남으려 애쓰던 논골주민들의 삶은 그러므로 과거가 아닌 현재이며, 

 

 

이 벽화들을 통해 변모하는 미래를 꿈꾸는, 새롭게 살아남으려 하는 주민들의 처절한 외침이랄 수 밖에 없습니다.

 

 

1,2,3길을 돌아보는 동안 마을 어르신께 들었던 추억담 한가지

 

 

바로 논골길에서 내려다보던 묵호항쪽, 버덩에 자리잡은 스레트 지붕의 이층집,

 

바로 6,70년대 묵호항의 전성기때 고기잡이 배를 타는 선원들과 외지인들이 들어와 돈을 벌면서 보고싶은 처자식을 그리며 하루 일과가 끝난 후,

 

한 잔 술로 그리움과 노곤함을 달래던 주막 형태의 건물, 낡은 스레트 지붕의 이 건물이 바로 그 당시에도 있었던 유일한 건물이라 하네요.

 

 

이 주막집을 설명하시던 김인복 어르신의 목소리가 잠시 추억에 젖습니다.

 

일행중 누군가 여쭈어 보았지요.

 

어르신도 바로 그 분들 중 한분이냐구요.

 

맞으시다네요.

 

어쩐지 벽화 중 노가리 안주가 그려진 주막집 풍경에 어르신의 눈빛이 아련해진듯도 하더군요.

 

 

논골 1,2길을 내려와 묵호등대로 올라가는 길을 거쳐 3길을 올랐습니다.

 

 

 

 

 

 

누구에게나 삶은 그리 녹록치 않습니다.

그러나 그 어느 누구도 이 논골 주민들처럼 주어진 환경을 극복하며 살아내기는 더욱 쉽지 않습니다.

 

 

 

 

이 논골길을 오르내리며 느낀 최후의 감상은, 처음 이 길을 걸을 때 보았던 마음이정표의 가장 맨 아래 씌여진 '포기'가 아니라 맨 위에 씌여진 '희망'이었습니다.

 

꿈이며 인내며,사랑이었습니다.

 

 

고단한 삶에서 잠시 쉬어가라며 권해주시던 의자

 

 

척박한 바위 틈을 뚫고, 춥디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그저 조그마한 흙먼지 한 줌만 있어도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워가는 민들레처럼...

 

 

 

 

다른 벽화 마을들과는 달리 지자체의 적극적인 사업 투자가 아닌, 동해시와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사업으로 진행하고 있는 문화예술 프로그램에 공모하여 5년째 진행하고 있는 소박하고 차별화된 묵호 논골담길,

 

 

이정표도 없고 개똥과 쓰레기와 폐허가 많던 삶의 마지막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논골마을의 과거, 현재, 미래가 주민들의 노력과 정성으로 새롭게 태어나고,

 

 

또 회한어린 과거들과 여전히 척박한 현실 속에서 새로운 마을 커뮤니티 공동체로의 도약을 꿈꾸고 있는 논골담길을 떠나오면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떠난 사람들이 돌아올 수 있게 해달라던 마을 해설사이자 마을의 역사인 어르신들의 손을 잡았다 놓으면서 이정표 맨 위에 쓰여져있던 '희망'을 보았습니다.

 

 

언젠가 읽었던 이야기 중의 하나가 떠오릅니다.

열어서는 안되는 상자를 열어버린 판도라의 상자였던가요, 이 세상 모든 고통과 질병과 번뇌가 상자 밖으로 튀어나와 인간들을 괴롭혔지만, 그 상자 가장 아래에 남아있던 '희망'이 있어 인간은 그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다구요.

 

 

망을 버리지 않으면 이 세상 그 무엇도 두려울게 없습니다.

 

 

논골길 어르신들이 지니고 계신 그 '희망'으로 논골길 마을은 다시 한번 만원짜리를 물고 다니던 만복이가 돌아오는 마을이 되기를, 단순히 경제적인 가치만 높이는 마을이 아니라 진정한 마을 공동커뮤니티를 이루는 마을이 되기를 기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