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가면 좋으련만......
살다보면..가끔가끔 제 기억력은 왜 이리 퇴보를 하나 스스로도 한심스러울 때가 있어요.
지난번에 차키를 죽어라 찾고 있으니 울 딸,
"엄마, 열쇠는 엄마 오른손에 있구요, 안경은 엄마 얼굴에 있어요."
삼생아짐(속으로) ; 안경 물어볼라 그런걸 어케 알았지?? 귀신같은넘...
물어보지도 않은 안경의 행방꺼정 친절하게 일러주네요.
뿐인가요...
외출할 때 가스불 단속은 몇번이나 하는지...
자동차 열쇠며 집열쇠를 잃어버리는 건 부지기수...
얼마전에도 센터 열쇠 잃어버려서 문지기해주던 울 최후의 보루에게
열쇠 좀 넉넉히 복사해서 가져다 놓으랬더니
싫대요,
넉넉히 복사해놓으면 그거 다 잃어버려서 심각한 문제 생긴다구 저더러 한 개 갖고 집중해서 잘 챙기라네요.
통장 비밀번호 잊어버려서 농협 아가씨한테 무안당하고(농협 아가씨한테 제 통장비번을 물어보는 망신을...),
각종 인터넷 사이트 패스워드 찾기도 수차례,
어떨 땐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꺼정 오락가락,
자동차에 차키 꽂아놓고 기냥 내려서 애니카서비스도 종종 이용하고
(근데 어디에서든지 부르면 와요.정말 신기해...)
하여튼 제자신이 넘 한심해 저도모르게 "미치겠다, 정말..."
소리가 요즘엔 절로절로 나오네요.
지난 여름에도 부산으로 여행가면서 핸폰 놓고 가는 바람에
1박2일동안 핸폰에 남긴 부재중 전화며 문자메시지가 엄청나고,
통화를 시도했던 많은 분들로부터 일부러 전화 안 받았다는 원성마저 들어야했죠.
(제가 가끔 전화통화 하기 싫을 때면 안 받을 때가 있는데...
이번엔 결코 아니었는데,
제 성격 아는 많은 분들에게
해명하느라 진땀을...결코 씹은 게 아닌데...얼마나 욕을 먹었는지...)
치매의 초기증상이 건망증과 언어사용의 오류, 단어능력 상실 부터라는데...
하지만 영단어 오류사용이야 우리나라 말이 아니니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는 경우, 그나마 위안이 될까요??
제가 시집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우리 동네 어떤 형님이 '콘도미니엄 〓 콘도'를
여러사람 있는데서 "콘돔"이라고 한번도 아니고 여러번 반복해서 말씀하셔서
(속초에 있는 콘돔에 놀러갔다 왔는데 넘 좋았대요.)
웃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바로 잡아주면 배웠다고 티내냐 그럴까봐 말도 못하고...
혼자 돌아서서 얼굴 붉힌적 있어요.
얼마전에도 어떤 형님이 펜션인지 콘돔인지 넘 좋다구 그러시길래,
지금은 제가 많이 뻔뻔해져서 그랬죠.
"형님, 콘돔은 거시기할 때 애 안 만들라구 쓰는거구, 콘도라 그래, 콘도."
그랬더니 동네 형님, 그러시대요.
"콘돔이나 콘도나. 들어가 좋은건 똑같지, 뭘"
삼생아짐 ; 헐~~~
저보다 한참 대단한 울동네 형님들...두 손 들었죠.
바쁜 일상속에 스트레스가 쌓여 뇌활동이 잠시 멈추는 것일 수도 있고,
집중력 부족일 수도 있고...
혹은 수술이나 마취 후휴증일수도 있고...하여튼 나이들어가며 느는 건망증은 어쩔수 없죠.
그래서 수첩과 다이어리는 제 필수가 되어버렸네요.
어젯밤엔 문득 새로 바꾼 제 핸폰 번호가 갑자기 생각 안나서 나자신조차 엄청 황당했는데...
아무리 되짚어봐도 예전 번호만 생각나는 거예요.
한숨을 푸욱 쉬며, 제가...
"야, 나두 이젠 다됐나부다."
그랬더니, 첨엔 농담하는줄 알고 장난하지 말라던 울 집 녀석들
제가 정말 생각이 안 난다니깐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한마디씩 말을 던지네요.
수향넘 ; 엄마가 건전지야?? 충전안돼?
영재넘 ; 방전됐어?? 몇 볼트야??
민재넘 ; AA야, AAA 쓰리야?? 오래가는 건전지 에너자이저도 있어, 말만해, 엄마!
녀석들...엄마인 저를 건전지에...비유해서 놀려대네요.
에휴...
날로날로 느는 흰머리와 반비례해서 기억력은 점점 더 하향곡선을 그리니..이를 어쩜 좋아요...
지난번엔 수향넘이랑 서로서로 발 올려놓기 하다가 엎치락 뒤치락 구르며 실랑이가 붙었는데...
힘이 딸린 제가 수향넘 팔 깨물었더니,
수향넘이 엄마 무식하다고 혀를 차고, 평소에 제 누나한테
유감 많던 영재넘
"엄마, 누나 마블링이 부족하지? 맛없지, 그치?? 누나, 사료 안 먹고 뭐했어??"
그러자 민재넘, 누나는 A등급이 아니라 F등급이라는 둥, B1 등급이라는 등 한 술 더 뜨다가
제 누나한테 깔렸죠.
(녀석들이 소 기르는 집 자식들 티를 내요...티를...
그치만 이넘들아, 우린 비육소가 아니라 번식우다, 이넘아!!!)
에휴...한우소에 비유한 것보담은 건전지에 비유된 게 더 낫다고 해야 하나요...뭐 어쨌든...
하지만...정말 오래가는 건전지처럼
기억력도 좀 오래갔으면 좋으련만...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