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세상을 살아가는 힘

삼생아짐 2009. 10. 10.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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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에 아이들을 데려다 주느라 열심히 운전하고 있는데

 

뒷좌석에 앉은 녀석들 사이에서

 

계속 문자 소리가 띵/띵/띵

 

삼생아짐 ; 아침부터 어떤 넘이야??

 

도대체 어떤 넘이 쓰잘데없이 문자질 하는거야, 엉??

 

열을 화악 냈는데...

 

민재넘 ; 전 아닌데요. 형껀가봐요.

 

영재넘 ; 저도 아녜요. 엄마껀데요???

 

 

그러고보니...... 제꺼네요...

 

 

민재넘 ; 와아~~ 엄마 인기 되게 많은가보다.

 

문자가 한꺼번에 열개가 넘게 왔어.

 


삼생아짐 ; 문자 많이 옴 인기 많은거냐??

 

민재넘 ; 응. 엄마 정말 인기 많은가봐.

 

민재넘, 몹시 부러운 눈초리로 제 핸폰과 제얼굴을 번갈아 쳐다보고 있네요...

  

삼생아짐 ; (물건 주문들어왔나보넹...)

 

 

인빌쇼핑에선 주문결재되면 관리자와 생산자, 운영위원장, 주문자 모두에게 문자메시지가 떠요.

 

그래서 신속하게 배송 작업을 할 수 있죠.


 

녀석들은 그 사실을 모르니...

 

이 기회에 제가 인기많은 엄마(?)나 되어봐야겠다 싶어서

 

시침 뚝 떼고...

삼생아짐 ; 너네 엄마 인기 많은거 이제 알았어??

 

엄마가 말이야, 왕년에 말이야~~~

 

해가면서 으쓱했는데...


 

 

근데 눈치없는 영재넘, 얼른 제 핸폰가져가서 열어보더니

 

영재넘 ; 엄마, 농협에서 돈 인출됐다는데요??

 

공제도 나가고, 우리 급식비도 나갔는데??

 

어?? 전부다 돈 나간거네요??

 

삼생아짐 ; 음......(머쓱...)

 

(이넘이 눈치없게스리......)

 

누가 남의 핸폰 함부로 열어보라 그랬어, 앙?? 가만 안 내려놔??

 

 

 

했더니...

 

 

민재넘, 몹시 부러운 표정에서 갑자기 불쌍한 표정으로 표정 급변...

 

 

민재넘 ; 와...엄마 불쌍하다. 엄마 우리 이제 거지야??

 

삼생아짐; 거지는 무슨 거지? 기냥 빈털터리가 된거지.

 

너희들 군것질 하지 말고 더 아끼란 소린데??

 

 

제가 조금 심란해하자...

 

영재넘 ; 그래도 인기 많은 건 맞네요.

 

농협에서 인기 많은거잖아요.

 

한꺼번에 열통이나 보내는거니깐.

 

 

내참...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아침부터 쭈르륵 통장에서 잔고빠져나가는 소리를 들으며

 

녀석들의 위로를 받으니

 

기분 묘하네요.

 

 

게다가 민재녀석, 테니스 끝나고 아이스크림 사먹겠다고 제 아빠한테 탄 천원마저

 

도로 저를 주니...원...

(괜히 더 아끼란 소리 했나봐요...벼룩이 간을 내먹지...)

 

제가 괜찮다고 가져가래도 녀석, 굳이 저한테 내밀어요.

 

 

제가 녀석의 손에 쥐어주며, 대신 뽀뽀해 달라고 하자

 

녀석, 제 볼에 쪽(!)소리가 나게 뽀뽀를 했는데

 

그만 학교에 오던 유라(민재넘 후배)한테 정면으로 들켜버렸어요.

 

 

유라녀석, 씨익 웃으면서 고개 돌리고 

얼굴 잔뜩 빨개진 민재녀석, 어휴거리며 꽁무니가 빠져라 뛰어서 먼저 들어가버리네요.

 


 

이녀석이 학교에선 덩치가 또래나 자기 선배들보다 커서

 

목소리 깔고 어른흉내...

 

집에선 '엄마앙~~~'하던 넘이

 

자기 친구나 후배들앞에선 '어머님!!'한다든가

 

후배들이 뭐라그럼 '어, 그래??' 하면서 목소리깔고 무게 잡는 걸 몇 번 보았걸랑요.

 

 

 

녀석을 학교에 들여보내놓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기냥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감도네요.

 

 

  농협에 갚아야하는 이자며, 원금이며...한숨나오지만...

 

그리고 왜 우리 농촌은 이렇게 살아도 살아도 힘겨운건지

 

가끔 속상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사랑'과 '위로'를 주는 가족이 있어

 

살아갈 힘을 얻기도 하네요.

 

 

 

요즘...울 최후의 보루한테 신경질내긴 했지만...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는 그에게

 

힘을 주기보다 힘을 빼선 안되겠다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그래도 소득보다 투자가 많은 농촌살림이

 

가끔 화가 나고 한심스럽기도 해요.

 

 

 

갚아야 할 빚으로 남는 비싼 농기계들, 영농자재들, 소사료며,

 

도시보다 상대적으로 비싼 생필품 물가

 

영농철 너도나도 몰고 지나가는 트랙터 한 대가

 

도시의 웬만한 그랜저승용차 값에 전세값...

 

그래도 요즘은 농가마다 웬만한 기계들은 모두 다 갖추고 있죠...

 

 

 

가뜩이나 심란해하고 힘들어하는 울 최후의 보루에게

 

저만이라도 힘이 되어줘야하는데...

 

 그게 참 쉽지 않네요. 

 

 

 

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란...

 

모든 것을 가진 넉넉함보다

 

부족하지만 서로의 마음을 이해해주고

 

힘이 되어주고자 하는 그 마음이라는 걸

 

아이들로부터 배우고...새삼 느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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